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조의 서주 침공 (문단 편집) === [[여포]]의 부활과 [[유비]]의 등장 === 연주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조조는 회군을 하고 결국 도겸에 대한 복수도, 서주를 손에 넣는 것도 실패했다. 공손찬의 휘하에 있던 유비는 [[원소]]의 공격을 받고 있던 [[공손찬]]을 떠나 본격적인 군벌로 자리잡는다. 유비의 부하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반대했지만, 유비는 나름대로 도박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서주로 향했다. 처음엔 부하들의 우려대로 서주로 와서 후퇴할 수 밖에 없었으나, [[조조]]의 본거지 연주가 배신하여 조조가 후퇴하면서 결과적으로 서주행은 성공했다. 그렇게 서주는 뜬금없이 [[유비]]에게 넘어갔고, 유비는 본격적인 [[군벌]] 생활을 시작한다. 조조는 표를 올려 유비를 진동장군, 의성정후로 삼으며 유비의 서주 지배를 묵인한다. 이 때 [[원소]]는 한때 공손찬의 객장이었고, 국경지대에서 싸운 적도 있는 유비가 서주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현덕은 홍아(고아)하고 신의가 있소. 지금 서주가 그를 즐거이 추대하니 실로 내 소망에 부합하오."라고 받아들였다. 공손찬의 객장으로 원소군과 싸운 적이 있는 유비가 하남(河南) 군벌이 되었음에도 자기 뜻대로 되었다고 수긍한 것이다. 원소는 하북(河北)에서 자신과 공손찬이 싸우는 동안 상관도 없을 터인 하남(河南)으로 내려간 시점에서 유비의 본질을 파악하고 하북의 공손찬을 돕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 여포와 유비는 두고 두고 조조의 발목을 잡았다. [[원소]]가 [[공손찬]]을 격파하고, 하북 전역을 장악하면서 기반을 다지는 동안 조조는 여포와 5년 넘게 싸워야 했고, [[관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조조는 원소보다 비교적 열세에 놓였다. 여포는 도중에 꺾었지만 유비는 서주 → 하북 → 여남 → 형주 → 익주 순으로 도망가며 끝까지 맞서싸워서 조조의 천하통일을 저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